Worship Frontier Church of Bo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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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D-5 "믿음 소망 사랑" (고전 13)

Sermon Note in English

[설교 요약]

제목:  "믿음, 소망, 사랑" (제자도 2)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에게 배우며 예수와 동행하며 자라야 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은 그리스도의 제자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제자는 어떻게 이 세가지가 자라고 작동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신자는 "어두운 밤"을 직면할 때 자신의 삶에 실패와 고난이 크다고 느껴 방향감각을 잃어버립니다.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신자는 믿음의 성장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두운 밤이 신자의 지성을 휘감으면 신자는 믿음(신앙)을 어떤 문제의 해답이나 윤리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합니다. 하나님은 신자의 이해력과 지성을 넓혀서 하나님이 주기 원하시는 더욱 풍성한 진리를 신자가 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해답"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신뢰할 수 있는 관계로서의 믿음과 신앙"을 갖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결코 신자를 버리지 않으시고 홀로 두지 않으시는 관계로 여러분을 초대하신 분입니다.

어두운 밤은 신자의 기억을 휘감아서, 신자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과 이웃에 대한 수많은 기억을 갖고 살지만, 스스로 파악할 수 없거나 볼 수 없는 것들이 수없이 더 많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결코 떠나가지 않으시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신실한 증인이 되십니다. 히틀러 암살 계획에 참여하여 사형을 받아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은 디트리히 본훼퍼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는 하나님 손안에 놓여있는 것이다.”

나의 기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증언으로 신자는 정체성을 회복하여 소망을 갖게 됩니다. 소망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의 관계 속에서 연결되고, 그 결과 하늘에 계신 증인 곧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억의 혼란과 염려”속에서도 놀라운 인내를 발휘하여 믿음로 자라는 길을 가게 합니다.

신자가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를 통하여 믿음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때 신자는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고 그것을 원하게 될 것입니다.

[설교노트]

제목:  "믿음, 소망, 사랑" (제자도 2) 
본문: 고린도전서 13:8-13

10. 믿음: “신뢰할 수 있는 관계로서의 믿음”을 이해한다.
20. 소망: “신뢰할 수있는 관계로서의 소망”을 기억한다. 
30. 사랑: “신뢰할 수 있는 관계로서의 사랑”을 선택한다.

 

(고전 13:8-13, 새번역) [8]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언도 사라지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집니다.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10]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인 것은 사라집니다.
[11] 내가 어릴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12]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설교문]

제목:  "믿음, 소망, 사랑" (5) (제자도, 고린도전서 13장) 

 

1. 제자는 배우며 자라는 자입니다.

16세기 스페인 수사인 “십자가의 요한(St John of the Cross)"은 신자들이 "어두운 밤"을 직면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신자가 직면하는 “어두운 밤”은 실패와 고난으로 느껴지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열심”으로 인하여 신자가 “훈련”하고 “연습”하는 자리가 됩니다. 그리하여 제자는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자가 됩니다.

2. 제자의 삶의 특징: 믿음, 소망, 사랑

오늘 말씀에 나오는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데 없어서는 안될 특징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이 세가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이 세가지가 어떻게 신자의 삶에서 자라게 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3. 지성, 기억, 의지의 상호작용 (이해하는 것, 기억하는 것, 원하는 것)

16세기에는 신학자들이 인간의 정신은 지성과 기억과 의지의 상호작용으로 이해했습니다. “인간의 정신은 이해하고, 기억하고, 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하여 십자가의 요한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믿음은 지성(이해하는 것)에서 일어나고, 소망은 기억에서 일어나며, 사랑은 원하는 것에서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리스도인이 신앙의 성장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방향감각을 잃어버리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경우, 신자가 자신의 신앙을 올바르게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 지성을 가진 것을 봅니다. 그들은 기억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많은 혼돈 가운데 소망을 갖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또한 무엇인가를 원하여 선택하고 살아가지만 공허한 것을 원할 뿐입니다.

4. “스스로 자기를 속이는 사람”

야고보서에서는 이러한 신자를 “스스로 자기를 속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약 1:22-25, 새번역) “「22」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저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23」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얼굴을 거울 속으로 들여다보기만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24」 이런 사람은 자기의 모습을 보고 떠나가서 그것이 어떠한지를 곧 잊어버리는 사람입니다. 「25」 그러나 완전한 율법 곧 자유를 주는 율법을 잘 살피고 끊임없이 그대로 사는 사람은, 율법을 듣고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가 행한 일에 복을 받을 것입니다.

이제 신자는 자신의 지성과 기억과 의지안에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다시 새로워져야 합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안에서 다시 새로워 져야 합니다.

 

10. 믿음: “신뢰할 수 있는 관계로서의 믿음”을 이해한다.

11. 어두운 밤이 지성을 휘감고 있습니다.

신자의 지성을 방해하는 어두운 밤은 “하나님이 주시는 더욱 풍성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상실하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해답이 아닙니다. 그리고 신앙은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해답도 아닙니다. 무엇인 진정한 신앙입니까?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신앙의 본질입니까? 이러한 질문을 해 보아야 합니다.

12. 십자가의 성요한

십자가의 성요한은 "우리의 지성앞에 놓인 '장벽'을 인식하고 이해력을 방해하는 ‘혼돈과 상실’을 깨닫는 데서부터 진정한 의미의 신앙이 자라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해력과 정신과 지성을 넓혀서 더욱 풍성한 진리를 받아들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더 풍성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13. '신뢰할 수 있는 관계'

믿음과 신앙은 '신뢰할 수 있는 관계'라는 형태를 지닙니다. 결코 신자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는 존재(영원한 타자이신 하나님)가 있음을 깨닫 것이 신앙의 출발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삶에 수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버리받지" 않는다는 확신을 지니고 문제들을 끌어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하여 신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밝혀내고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담대하게 전하는 능력과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13-1. “신뢰할 수 있는 관계로서의 믿음”

“신뢰할 수 있는 관계로서의 믿음”은 진리를 지배할 수 있는 내 능력에 대한 신앙이 아니라, 진리가 나를 지배할 수 있고 내가 사로잡히는 것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확신입니다. 내가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나와 살아 있는 진리의 관계를 이어주고 지탱해 줄 때 그 관계는 신뢰할 만한 것이 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히여 이를 위해서 내쪽에서 자신이 소유한 자원들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14.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세우는 것

신자는 현명한 체계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세우는 것이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어둔 밤이 지성을 휘감은 시대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를 회복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런 관계를 세상에서 구체화하고 나누도록 부름받은 것입니다.

 15. 하나님과의 관계를 살펴보는 질문 (True or False Questions)

15-1.
( ) The most important thing in Christian life is having the right relationship with God and neighbors. (Matthew 22: 34-40)
( )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 34-40)

15-2.
( ) Just because you don’t have good relationship with your neighbor doesn’t mean you have bad relationship with God. (Matthew 22: 39)
( )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나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마태복음 22: 39)

15-3.
(마 22:39, 새번역)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16. 요약 / 권면

-나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과의 신뢰의 관계를 만들어 가십시오. (이를 위해 자신이 스스로 신뢰하던 것들을 내려 놓는다)

- 하나님과의 신뢰관계에 있음을 삶에서 나타내십시오.  (약한자 소외된자 고난당하는자 변두리에 있는 자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관계로서의 믿음을 보여준다)

  

20. 소망: “신뢰할 수있는 관계로서의 소망”을 기억한다.

21. 어두운 밤이 기억을 휘감고 있습니다.

어두운 밤은 우리의 기억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우리는 누구였고, 나는 누구였나? 지금 우리는 누구이며 나는 누구인가?”

  21-1. 자기 정체성의 혼란

사람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도 지난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살펴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이 사회와 개인들은 자기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기억의 연속성이 무너져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기억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것들을 근거로 하여 미래를 그려봅니다. 그런데 그들은 염려속에서 살아가고 소망을 잃어버린채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서 절망의 소리를 듣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외부의 소리가 자신의 절망에 대해서 말하기 때문에 소망을 상실합니다.

 22. 나의 정체성 (디트리히 본훼퍼)

나는 누구인가? / [예, 디트리히 본훼퍼의 옥중서신에서]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감방에서 나오는 나의 모습이 어찌나 침착하고 쾌활하고 확고한지 마치 성에서 나오는 영주 같다는데"

정체성에 대한 차이가 있습니다. “남들이 보는 모습 vs. 자신이 스스로 아는 내면의 실상”의 차이
- 남들이 보는 모습 (확신에 차고, 어른 스럽고 이성적이며, 늘 기도하고 신실하고 용기 있는 사람)
- 자신이 스스로 아는 내면의 실상 (나약함, 패배감, 내면의 탄식과 두려움으로 버둥거리는 사람)

그래서 본훼퍼는 묻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나인가?"
- 남들이 말하는 내가 참 나인가?, 나 스스로 아는 내가 참 나인가?

그의 솔직하고 놀라운 대답이 신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안목을 줍니다.
"나로서는 알 수 없다. 하나님께서 답하셔야 한다. 내가 진정 용기 있는지 겁쟁이인지, 자신감이 넘치는지 두려움에 떠는지, 아니면 둘 다인지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는 하나님 손안에 놓여있는 것이다.”

 23. 정체성을 알려주는 증인이 있다.

신자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안에서 (물론 이웃과의 관계성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솟아오르는 소망을 누려야 합니다.

관계속에서의 소망은 신자를 떠나가거나 포기하지 않는 존재와의 관계, 우리가 누구였으며 지금 누구인지 알고 이해하며 그대로 붙잡아 주는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누리는 소망입니다.

신자가 정체성을 지니는 까닭은 신자가 스스로 정체성을 고안해 내거나 또는 불변하고 견고한 자아를 중심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신자가 누구인지를 말해 주는 증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23-1, 사랑의 눈길을 가지신 하나님이 그 증인입니다.

“어떤 개인이 스스로 파악하거나 볼 수 없는 것들, 곧 하나로 연결되어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다듬을 수 없는 자아의 단편들이 하나도 빠지없이 모두 하나님의 사랑의 눈길 안에 포착되어 우리가 누구인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는 스스로 나서서 자신이 누구이며 또 누구였는지의 문제와 씨름하거나 확정지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23-2. [상상해 보라] 결코 떠나가지 않으시는 분의 눈으로 보면, 과거나 현재나 신자의 모든 것이 여전히 참된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서로 단절되고 이질적인 단편들이 신성한 관찰자 곧 거룩하신 증인의 손길 안에서 돌연 하나로 통합되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24. 신뢰할 수 있는 관계로서의 소망은 인내속에서 신자를 자라게 합니다.

소망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의 관계 속에서 연결되고, 그 결과 하늘에 계신 증인 곧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억의 혼란과 염려”속에서도 놀라운 인내를 발휘하여 믿음로 자라는 길을 가게 합니다. 

관계속에서의 소망을 품은 신자는 수많은 환경속에서 인내합니다. 혼돈과 불확실성에 휩쓸려 있는 현실 인간에 대한 인내, 많은 것들이 불확실하고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환경 속에서의 인내, 우리 각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인정하는 인내등입니다.  

24-1. 우리 각 사람이 자라는 데 시간이 걸린다면,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온전히 자라는 데도 시간이 걸립니다. 소망과 인내는 하나로 엮여 있습니다. 인내를 배운 교회만이 효과적으로 소망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25. 요약 / 권면

신자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작품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스런 은혜를 찬미하는 삶을 살도록 자라고 세워질 것을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날마다 인내하며 살아가시길 부탁 드립니다.

(엡 1:6, 새번역)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하게 하셨습니다.”(Eph 1:6, NIV11) “to the praise of his glorious grace, which he has freely given us in the One he loves.”

(엡 2:10, 새번역)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Eph 2:10, NIV11) “For we are God’s handiwork, created in Christ Jesus to do good works, which God prepared in advance for us to do.”
(Eph 2:10, MSG) “No, we neither make nor save ourselves. God does both the making and saving. He creates each of us by Christ Jesus to join him in the work he does, the good work he has gotten ready for us to do, work we had better be doing.”

 

30. 사랑: “신뢰할 수 있는 관계로서의 사랑”을 선택한다.

31. 어두운 밤이 우리의 의지(선택)을 휘감고 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면서 자신들의 의지와 선택을 일련의 단절되고 파편화된 선택 행위에만 사용합니다. 정말 자신이 원하는 본질적인 것을 선택하기 위한 의지는 없어지고, 자기들에게 필요한 피상적인 것들을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32. 진정으로 선택해야 하는 것들

그런데, 진정 선택해야 하는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이 되게 해 주는 깊은 열망”, “우리를 우리로 만드는 부르심”, “우리 각자를 자신의 목표를 향해 가도록 이끌어 가는 흐름” 등등에 관한 것입니다.

 33. [다음 시간에]